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 사례로 본 “퍼블리시 오어 페리시” 시대 생존 전략

“퍼블리시 오어 페리시(publish or perish)는 논문을 꾸준히 내지 않으면 연구비와 자리, 승진을 잃을 수 있다는 현대 학계의 압박을 상징하는 말이다.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치열한 시대를 어떻게 통과했을까? 이 글에서는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의 실제 경로를 바탕으로 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에 의미있는 생존 전략을 정리해보았다.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의 현실: 왜 힘든가?

논문이 곧 통화인 시대

현대 연구 시스템에서는

  • SCI급 저널 게재
  • 임팩트 팩터, 인용지수
  • 프로젝트 수주 실적

이 승진·평가의 중심이 됩니다.

그 결과:

  • 단기 성과에 유리한 주제를 선호
  • “안전한 연구”에 몰리는 경향
  • 장기·고위험 연구가 줄어드는 부작용

이런 구조는 여성 연구자에게 더 불리한 경우가 많습니다.
경력 단절, 돌봄 노동, 편견 등이 겹치기 때문입니다.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 수는 왜 이렇게 적을까?

노벨 재단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,
1901~2025년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67명, 그 중 화학상 수상 여성은 8명에 불과합니다.

  • 전체 화학상 수상자의 약 4% 수준입니다.

이는 단지 “역사적 우연”이라기보다,

  • 연구 기회,
  • 인프라,
  • 평가 구조

전반에서 여성에게 불리했던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.

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는
이 구조 안에서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냈습니다.


전략 1: “논문 수”가 아니라 “질문”부터 세운다 – 아다 요나트의 리보솜 도전

모두가 말린 연구 주제

아다 요나트는 젊은 시절 “리보솜 구조를 풀겠다”는 목표를 세웠습니다.
당시 많은 연구자들이

  • 분자량이 너무 크고
  • 결정화가 거의 불가능하며
  • 실험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보고
    실질적으로 포기했던 주제였습니다.

하지만 그는 이 “비현실적인 목표”를 향해
수십 년 동안 꾸준히 실험을 이어 갔고,
결국 2009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.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에 주는 메시지

아다 요나트의 사례가 주는 핵심 전략은 명확합니다.

  1. 질문의 크기에서 출발
    • 남들이 “너무 어렵다”고 피하는 질문일수록
      장기적으로는 차별화된 업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큼
  2. “논문 편수”에 끌려가지 않기
    • 중간중간 부분 성과를 논문화하되,
    • 최종 목표(리보솜 전체 구조)를 잊지 않고 연구 전략을 설계
  3. 실험의 실패를 “경력 리스크”가 아니라 “데이터”로 받아들이기
    • 실패를 계속 기록하고 다음 실험 설계를 바꾸는 태도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환경에서도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다 요나트는
“출발점은 논문 수가 아니라 질문의 크기”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 준 셈입니다.


전략 2: 실패를 공개하고, 실험을 시스템으로 돌린다 – 프랜시스 아놀드

방향성 진화와 반복 실험의 철학

프랜시스 아놀드는 효소의 “방향성 진화(directed evolution)”를 개척했습니다.
돌연변이를 무작위로 도입한 뒤,
성능이 좋은 변이만 선별하고 다시 돌연변이를 반복하는 방식입니다.

그녀의 논문과 강연을 보면

  • 많은 시도와 실패,
  • 조건 조정과 중간 결과,
  • 점진적인 개선 프로세스

자체가 하나의 과학적 메시지로 제시됩니다.

실패를 숨기지 않는 태도가 왜 중요한가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에는

  • 깔끔한 성공 결과만 보고 싶어 하는 문화,
  • “실패”를 커리어의 흠으로 보는 분위기

가 강합니다.

하지만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놀드는

  • 실패와 시행착오를 실험 설계의 일부로 통합하고,
  • 그 과정 자체를 논문과 강연에서 공개함으로써,
  • 후속 연구자들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습니다.

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생존 전략:

  1. 실패 일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,
  2. “실패의 패턴”을 분석해 프로세스를 개선하며,
  3. 적절한 시점에는 이 과정을 하나의 “메서드 논문”으로 공개하는 것.

이렇게 하면,
단발성 성과보다 훨씬 오래 인용되는 “방법론”을 남길 수 있습니다.


전략 3: 한 편의 초고임팩트 논문을 위한 장기 준비 – 샤르팡티에·다우드나의 CRISPR

2012년 사이언스 논문, 그 뒤에 쌓인 레이어들

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는 2012년
“Programmable dual-RNA-guided DNA endonuclease”라는 제목의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합니다.

이 논문은

  • CRISPR-Cas9 시스템이
  • 원하는 DNA 서열을 선택적으로 절단하고
  • 유전자 편집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
    정말 전환점이 된 논문입니다.

이 한 편의 논문은 이후 수만 회 이상 인용되며,
2020년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지는 핵심 근거가 됩니다.

하지만 이 논문은
“갑자기 번뜩인 아이디어”가 아니라,

  • 세균 면역 시스템에 대한 샤르팡티에의 오랜 연구,
  • RNA 구조·효소 메커니즘에 대한 다우드나의 전문성,
  • 여러 편의 선행 논문과 실험적 시행착오

위에 쌓인 결과물입니다.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의 “논문 포트폴리오” 전략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의 CRISPR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.

  1. 포트폴리오 구성
    • 짧은 데이터·방법 논문 +
    • 중간 단계 결과 논문 +
    • 장기간 준비한 “빅 페이퍼”를 조합
  2. 협업 네트워크 구축
    • 단일 연구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
    •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팀과 협업해
      “한 번에 크게 나가는” 논문을 설계
  3. 타이밍 관리
    • 경쟁 그룹의 연구 속도,
    • 저널 심사 기간,
    • 특허·사업화 일정 등을 전략적으로 고려

샤르팡티에·다우드나는
단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,
논문 간의 “연결 구조”와 “시점”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한 대표적인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.


전략 4: 전통적인 틀 밖에서 자신만의 영역 만들기 – 캐럴린 베르토치의 생체정렬 화학

‘남들이 안 보던 틈’을 개척하다

캐럴린 베르토치는 클릭 화학을
살아 있는 세포·동물체 안에서도 쓸 수 있게 확장해
생체정렬 화학(bioorthogonal chemistry)이라는 영역을 개척했습니다.

초기에는

  • 유기화학,
  • 생화학,
  • 당생물학(글라이코바이올로지)
    가 섞인 다소 애매한 분야였지만,

그는

  • 독창적인 반응 설계,
  • 세포·동물 모델에서의 실제 응용,
  • 암·면역·약물 전달로의 확장

을 꾸준히 논문화하며,
결국 “새로운 표준 도구” 수준으로 만들어 냈습니다.

틈새에서 중심으로: 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의 니치 전략

캐럴린 베르토치가 보여주는 생존 전략은 이렇습니다.

  1. 기존 전공 경계 사이의 틈 찾기
    • 유기합성 vs 생물학,
    • 기초 vs 응용 사이에 있는 “이도 저도 아닌” 주제
  2. 그 틈을 “내 이름과 강하게 연결된 분야”로 만들기
    • 연속된 시리즈 논문,
    • 리뷰 논문,
    • 컨퍼런스 강연,
    • 교과서·리뷰 챕터 참여 등을 통해
      해당 키워드(생체정렬 화학)와 자신의 이름을 묶어 버리기
  3. 논문만이 아니라 ‘플랫폼’으로 확장
    • 항체-약물 접합체,
    • 이미징 시약,
    • 진단·치료 응용 등
      산업·의학 쪽으로 연결되는 응용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환경에서
“같은 포맷의 논문”만 쌓기보다는,
자신만의 니치(niche)를 개척해
그 분야를 사실상 독점적 지위로 끌어올리는 전략입니다.


전략 5: 퍼블리시만이 아니라 ‘퍼시스트’ – 지속 가능하게 버티는 기술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 인터뷰와 강연을 보면
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키워드가 등장합니다.

  • 끈기(perseverance)와 장기적 시야
  • 멘토와 동료 네트워크의 중요성
  • “완벽한 경력 경로”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

퍼블리시 오어 페리시 시대에
“퍼블리시”보다 더 중요한 것은
실제로는 “퍼시스트(persist, 버티기)”일 수 있습니다.

실질적인 생존 전략 정리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의 사례를 묶어
실제 연구자·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을 정리해 보면:

  1. 논문 전략
    • 단기·중기·장기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영
    • 포트폴리오 안에 “고위험·고보상” 과제를 반드시 포함
    • 방법론·리뷰·데이터베이스 논문 등 “긴 호흡으로 인용되는 글”을 의도적으로 배치
  2. 시간·집중력 관리
    • 매일 일정 시간을 “논문 읽기·정리”에 고정
    • 주당 최소 1번은 장기 프로젝트만을 위한 ‘딥 워크’ 시간 확보
  3. 네트워크·멘토링
    • 한 분야의 거장뿐 아니라, 비슷한 단계 동료들과 논문 아이디어를 상시 교환
    • 학회·워크숍에서 질문을 많이 하고, 온라인 세미나를 적극 활용
  4. 경력·삶의 균형
    • 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상당수가
      가족, 돌봄, 비정형 경력 경로를 가졌음을 기억할 것
    • “교과서 같은 완벽한 이력서”가 아니어도 충분히 정상에 도달 가능

여성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이 자주 연구한 화학 분야 TOP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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